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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코리아 인터뷰 |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

11월 1st, 2018 News

기자는 지난 8월 중순,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미식 여행’을 다녀왔다. 고등어회, 딱새우, 전복 김밥, 흑돼지 바비큐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맛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맛’ 하나도 발견했다. 바로 ‘제주맥주’였다.

그동안 수제 맥주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고 라거 맥주의 ‘톡 쏘는 맛’에 길들여져 있던 터라 수제맥주 특유의 부드럽고 쌉쌀한 맛엔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들른 제주도 한 편의점에서 맛본 ‘제주맥주’는 기자의 편견을 완전히 깨부쉈다.

처음에는 그저 기념품용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숙소에 들어가 우연히 마셔본 제주맥주 맛은 생각보다 꽤 좋았다. 그동안 가져왔던 수제맥주에 대한 편견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4잔의 법칙’을 실현하다

지난 10월 중순 서울 중구 제주맥주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에게 이런 기자의 경험을 살짝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문 대표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제맥주 맛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맥주 맛은 맥주를 제조하는 브루마스터의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이니까요. 쓴 맛, 부드러운 맛, 달콤한 맛 등 다양하게 맛을 구현할 수 있죠. 맥주를 즐기는 소비자들의 입맛도 모두 다릅니다.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제맥주를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그럼에도 ‘맥알못(맥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기자도 맛있게 느꼈기에 분명 무언가 비밀이 있을 듯했다. 문 대표는 기자의 말에 ‘4잔의 법칙’을 언급했다. ‘4잔의 법칙’을 지킬 수 있는 맥주 맛을 구현하는 게 제주맥주의 ‘맛 철학’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문 대표는 말한다. “4잔의 법칙은 쉽게 말해 한 사람이 한 자리에서 적어도 4잔 정도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맛을 갖고 있어야 맥주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맥주는 3잔 정도 마시면 맛에 상관없이 배가 부르거든요. 그 배부름을 느끼고도 한 잔 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맛을 구현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혁기 대표가 처음 수제 맥주를 접하게 된 곳은 ‘수제맥주의 천국’인 미국이었다. 지난 2011년 젊은 외식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던 문 대표는 비빔밥 프랜차이즈를 런칭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 그 곳에서 우연히 맛본 수제맥주는 문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당시 수제맥주 첫 모금을 삼키자 ‘와!’라는 작은 탄성이 나왔다고 한다. 술을 종종 즐기는 편이었던 문 대표도 생전 처음 맛보는 맥주 맛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수제맥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맥주 원료 ‘홉’의 맛이 강한 수제맥주라면, 획일화된 국내 맥주시장에서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문 대표는 곧바로 서울 이태원을 찾았다. 외국 문화가 가장 잘 발달한 이태원이야말로 국내 수제 맥주 맛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맛본 수제 맥주는 미국에서 경험한 맛과 완전히 달랐다. 적잖은 실망을 한 채 발길을 돌렸지만, 오히려 문 대표의 가슴 속에선 수제 맥주 사업에 대한 열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진짜 제대로 된 수제 맥주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면 분명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사업 시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욕은 있었지만, 맥주는 생산하기에 그리 만만한 제품이 아니었다. 문혁기 대표는 맥주 사업을 ‘식음료’라기보단 ‘시설기반 사업’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맥주 제조에 필요한 양조 설비는 도입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크기도 커서 소형 브루어리가 아닌 이상, 일정 규모의 공장도 갖춰야 했다. 한마디로 상당한 수준의 초기 자본 없이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문 대표에겐 자본 만큼이나 노하우도 부족했다. 수제 맥주는 제조방식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차이에도 맛이 달라질 정도로 민감한 음료다. 대량 생산에서도 한결같은 맛을 내기 위해선 시설 만큼이나 시설을 운용하는 노하우가 필수적이었다.

그는 이 같은 문제를 ‘협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손잡은 곳이 바로 미국 유명 수제 맥주 회사인 ‘브루클린 브루어리’였다. 지난 2015년 2월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공동 출자해 제주맥주를 창업한 문 대표는 이후에도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30년 양조 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우며 사업을 이어왔다.

◆수제 맥주의 천국이 된 ‘제주’

문 대표가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통해 배운 노하우는 양조 기술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제주도’를 사업 전초기지로 삼은 것 역시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마케팅 노하우를 한국 시장에 접목시킨 결과였다. 문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브루클린 브루어리 관계자를 만나러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 곳 양조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 수 있었죠. 그들은 모두 양조장 내부를 투어하고 그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생맥주’를 마시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맥주 공장이 단순한 ‘생산 시설’을 넘어 하나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저희 공장도 하나의 관광상품처럼 인식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던 중 국내 최대 관광지 ‘제주도’가 떠올랐고, 그곳에 공장을 짓기로 마음을 먹었죠.”

물론 그건 관광만을 염두에 둔 결정은 아니었다. 맥주 맛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인 ‘물’도 고려대상이었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물이 좋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수원(水源)지가 제주도인 ‘삼다수’가 국내 생수시장 부동의 1위 브랜드인 것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에 자리 잡고 있는 제주맥주 양조장은 제주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볼만한 인기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곳에선 제주맥주의 전 생산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양조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도 기다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생맥주 시음’이다. 갓 제조된 신선한 ‘생(生) 제주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이 곳 양조장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이 처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제주맥주 양조장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까? 올해 상반기 관광객만 약 2만 5,000여 명이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올해 제주맥주 양조장 관광객은 5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문혁기 대표는 “양조장 투어는 또 다른 수익 창출과 함께 완벽한 마케팅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확충해 양조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더욱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제주맥주 제품(위트에일, 펠롱에일)이 제주의 ‘맛’에서 영감을 얻어 제조됐다는 부분이다. 문 대표는 제주도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에 최적화된 맥주 맛을 구현하기 위해 제품 개발을 했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현재 저희는 제주의 물과 유기농 제주 감귤 껍질을 사용해 만든 에일맥주 ‘위트 에일’, 4종류의 홉을 블렌딩해서 만든 ‘펠롱 에일’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위트에일은 제주도 대표 음식인 고등어회, 방어회, 흑돼지 오겹살 등 기름진 음식에 어울리게 만든 맥주입니다. 펠롱 에일은 각종 생선 조림, 찌개 등 매콤한 음식에 어울리도록 만들었죠. 물론 개인 입맛에 따라 다양한 음식과 함께 드셔도 상관없지만, 이런 팁을 알고 드신다면 좀 더 맛있게 저희 제주맥주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주맥주의 또 다른 특징은 독특한 제품 유통 전략이다. 제주맥주의 첫 제품 ‘위트 에일’은 2017년 9월 출시됐다. 그런데도 위트 에일이 본격적으로 전국에 유통된 시점은 그 보다 8개월 뒤인 2018년 5월 무렵이었다. 그리고 지난 8월 출시된 두 번째 제품 ‘제주 펠롱 에일’은 현재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구매할 수 없다. 현재 펠롱 에일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도 내 식당, 편의점, 맥주 가게 뿐이다.

여기에는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맥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전력이 깔려 있다. 문 대표는 말한다. “앞으로도 이 전략은 계속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우선 제주도에서만 판매해 제주맥주에 대한 희귀성과 특수성을 부각시키고,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타면 내륙에 공급하는 전략이죠. 현재 제주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펠롱 에일의 경우, 내년 상반기에는 서울을 포함한 내륙에 공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정확한 시점은 저희도 아직 몰라요. 다만 펠롱 에일이 내륙에 공급될 무렵에는 현재 저희가 개발 중인 세 번째 신제품이 제주도 내에 출시되어 있을 겁니다.”

제주맥주의 성장세는 국내 여타 수제맥주 브랜드보다 월등하다. 지난 2분기 소매점 캔 제품 판매량이 전 분기 대비 290% 성장했다. 올해 7월 매출 역시 전년 대비 15배 늘어났다.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올해 국내 수제맥주업계 최초로 연 매출 100억 원 달성이 유력하다.

문혁기 대표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생산성을 늘려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생산 설비를 3배 이상 증설할 계획을 세우고 기초 작업에 돌입했다. 또 현재 개발 중인 제주맥주의 세 번째 제품에도 큰 기대를 갖고 있다. 4잔을 넘어 5잔의 법칙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문 대표는 말한다. “단순한 수제맥주 브랜드를 넘어 제주를 대표하는 하나의 미식,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성장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리며, 제주도로 올 계획이 있는 독자들이 계시다면 제주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제주맥주를 곁들여 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주세법 개정으로 맥주시장 되살려야◀

문혁기 대표는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계속 ‘주세법’을 언급했다. 사실 주세법 논란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편의점 및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4캔에 1만 원’짜리 수입 캔맥주 논란도 시발점은 바로 주세법이었다.

시장에선 이 같은 프로모션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맥주시장 앞마당을 수입 맥주에 내어주는 꼴이라는 비난과 ‘맛과 가격에서 우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물론 수제 맥주 시장은 이러한 논쟁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느냐에 따라 수제맥주 시장도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혁기 대표는 우선 반드시 전제돼야 할 부분이 있다며 한 가지를 주장했다. 대형 국산 맥주 기업의 기술력을 폄하하는 일부의 시선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만드는 설비와 기술을 갖춘 기업 중 동일한 맛을 지속적으로 내는 곳은 거의 없다”며 “어쩔 수 없는 비용 절감 과정에서 오는 맛의 차이일 뿐, 국내 맥주 회사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오히려 문제는 ‘주세법(酒稅法)’에 있다고 말했다. 수입 맥주에 유리하고 국산 맥주에는 불리한 주세법 재검토와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말한다. “현재 국산 맥주에는 제조원가,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모두 합친 순매가에 세금을 부과합니다. 반면 수입 맥주는 단순 공장출고가에 운임비 등을 더한 수입 신고가에 국산 맥주와 동일한 세율을 부과하죠. 그런데 수입 신고가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명확한 기준이 없어요. 그냥 수입사에서 싸게 매기면 세금도 덜 내게 되는 겁니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 주세법이 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다수 다른 국가들은 알코올 함량이나 술의 부피·용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채택 운영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종가세를 선택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칠레, 멕시코, 터키 4개국 뿐이다.

문 대표는 “주세법 변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입 맥주와 같은 생산단가를 맞추기 위해 원재료 함량을 낮추는 현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며 “종량세를 도입해 국내 맥주 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수제맥주협회는 대형 맥주기업과 공조해 현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기 위한 대(對) 정부 차원의 노력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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