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급등하는 장바구니 물가의 원흉은 기후변화다. 거듭되는 폭염과 한파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지면서 농⋅축⋅수산물의 생산량이 출렁이고, 이에 따른 가격 변동성 역시 극심해졌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지난 5월 127.8로 10년 만에 최고 상승률(4.8%)을 기록했다. BIS(국제결제은행)가 지난해 “기후변화로 인한 농산물 수급 불균형으로 단기간 내 식료품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스타트업 ‘트릿지(Tridge)’는 이처럼 점점 심화하는 농⋅축⋅수산물 시장의 변동성을 기회로 삼았다. ‘글로벌 농⋅축⋅수산물 무역 거래 플랫폼’이라는 신개념 서비스가 이 회사의 주력 사업이다. 세계 각국의 휴민트(정보원)와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 세계 각지의 농수산물 공급처와 가격 동향 정보를 수집·분석해 판매하고, 직접 거래를 중개하거나 무역 업무 대행까지 한다. 신호식(44) 대표는 “한마디로 글로벌 농⋅축⋅수산물 시장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트릿지가 지금까지 수집한 가격 데이터는 5억건, 농산물 공급처 정보는 전 세계 90국 11만개에 달한다. 카길 같은 농산물 전문 기업이나 골드만 삭스 같은 투자은행의 농산물 원자재 투자 그룹 이상의 정보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 세계 가격과 공급망 정보 확보
트릿지는 이미 글로벌 농⋅축⋅수산물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유명하다. 트릿지를 통해 농⋅축⋅수산물 데이터를 얻거나, 상품을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이 9만개를 넘어섰다. 코스트코⋅월마트⋅이마트⋅델몬트⋅돌(Dole) 같은 유통 대기업부터 맥킨지⋅PWC⋅딜로이트 같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등 고객사의 면면도 화려하다. 신 대표는 “대부분 해외 기업이고, 국내 기업 고객 비율은 5% 남짓”이라고 했다.
신 대표는 투자은행 도이치방크와 한국투자공사에서 원자재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농⋅축⋅수산물 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가격과 공급처 정보에 대한 수요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이를 손쉽게 얻을 방법이 없더라”는 것이다. 신 대표는 “인간이 소비하는 식품의 약 25%가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거래되는데, 농⋅축⋅수산물 거래처 정보와 원가가 (무역·유통기업의) 영업 비밀이라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로 인한 리스크는 크다. 거래하던 곳의 생산량이 부족해지거나 가격이 폭등하면, 정보나 네트워크가 부족한 기업은 한철 장사를 모두 놓칠 수 있다. 대체 공급처를 찾는다 해도 농장이 있는 해외에 직원(에이전트)을 급파해 품질을 확인하고 운송과 검역 절차를 밟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다음 시즌에나 물건을 팔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손쉽게 해결해 주는 것이 트릿지의 역할이다. 신 대표는 “(트릿지를 통해) 전 세계 농산물의 품목별 공급량과 가격을 동시에 살피고 분석해 빠른 공급처 전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예컨대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아보카도가 비싸지면, 트릿지가 관리하는 페루나 칠레, 케냐의 제품으로 바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90국 11만 공급처의 정보를 확보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2015년 설립된 트릿지는 이런 경쟁력을 인정받아 이듬해 손정의의 소프트뱅크에서 30억원을 투자받았고, 지난 6월엔 벤처캐피털 포레스트파트너스에서 6000만달러(약 7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추가 유치했다.
◇외국인 직원 더 많은 ‘글로벌 기업’
트릿지가 이렇게 많은 공급처를 발굴·관리하는 비결은 두 가지다. 우선 직접 농장을 방문해 상품을 검수하고 계약도 체결하는 현지 무역 전문가 EM(Engagement Manager)이 있다. 270명의 트릿지 직원 중 절반 이상이 EM이다. 신 대표는 “신선도가 중요한 농⋅축⋅수산물을 다루는 만큼 직접 농장을 방문해 상품을 확인하고 유통 과정을 책임져줄 현지 전문가는 필수 인력”이라고 했다. 트릿지는 네덜란드 등에 상주하는 채용팀을 통해 산지(産地)의 현지인 전문가를 직접 채용하고 있다. 그는 “국내 스타트업이지만 외국인 직원이 더 많다는 점에서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트릿지의 AI 시스템이다. EM을 통해 직접 입수한 정보부터 관련 협회가 발표하는 통계, 전문가 보고서, 정부 발표와 외신 등 약 1100만곳의 출처에서 나오는 매일 5만개의 방대한 농⋅축⋅수산물 데이터가 AI를 통해 자동으로 수집·분류·분석되고 있다. 이 AI는 40여 명의 사내 개발자가 5년의 세월을 들여 개발했다. 신 대표는 “15만 품목을 20만개 이상 속성(屬性)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재배 방법과 원산지, 수출량, 가격 같은 기초적인 정보를 넘어서 같은 새우라도 머리를 떼어낸 상품인지까지 분류해낸다”고 설명했다. 트릿지가 첨단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 대유행(팬데믹) 속에 출장길이 막히자 풍부한 시장 데이터와 현지 전문가(EM)까지 대거 보유한 트릿지를 찾는 기업이 급증했다. 트릿지 측은 “매달 약 1000~1500건의 계약을 주선 중”이라며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약 2~3배 늘어난 수치”라고 했다. 올해 말까지 EM 수를 500명으로 늘리기 위해 전 세계 50국에 지사도 추가 설립 중이다. 지난 6월 신규 투자 과정에서 트릿지의 기업가치는 5억달러(약 5800억원)로 평가됐다. 차세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진입도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 대표는 “미국 블룸버그 같은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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