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의 과일 수입업자 니콜라이는 도매시장에 식품가공 회사에 납품할 토마토 100t를 급히 물색한다. 오프테이크 계약(off-take미래 생산물을 미리 구매하는 계약) 관계인 멕시코 현지 농장에 허리케인이 덮쳐 납품량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그러나 수해를 입은 것은 남미 지역의 다른 농장도 마찬가지여서 물량이 부족하고 가격은 턱없이 높게 뛴 상황이다.
반면 한국 경북 청송군의 농업인 조봉출씨는 이례적인 풍년으로 토마토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시장에 팔아봐야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땅에 파묻는 게 낫겠다’는 근심에 빠져 있다. 서로 원하는 것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이들 간에 ‘무역’이 발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바이어와 공급자가 서로를 어떻게 인지하며, 안다고 해도 어떻게 믿고 거래할 수 있겠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 바로 트릿지(Tridge)다. 전 세계 수백만 공급자가 생산하는 농·축·수산물 15만 종의 가격과 품질, 물량과 같은 정보를 집대성해 바이어와 공급자가 ‘서로를 인지하게’ 했다. 나아가 바이어와 공급자 사이에 중개자 역할로 다리를 놓으면서 거래가 가능할 만큼 ‘서로를 믿을 수 있게’ 했다.
올해 초부터는 바이어가 주문만 넣으면 현지 농장 실사부터 계약 협상, 패키징, 운송까지 대행하는 비대면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도 시작했다.
코모디티(commodity·원자재) 트레이더 출신인 신호식 대표는 지난 2013년 한국과 일본의 철강 회사에 납품할 벌크선 한 척 분량(6만t)의 석탄이 증발하는 아찔한 경험을 한 뒤 트릿지를 창업했다. 공급을 약속했던 광산이 석탄 시세가 오르자 시장에 전부 팔아버린 것이다. 한 달 내내 비행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 전역을 뒤졌지만 그만한 물량을 갑자기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다국적 무역회사에 웃돈을 잔뜩 주고 아슬아슬하게 납기일을 맞췄다.
신 대표는 “편의점에서 사서 이마트에 판 격이었다”며 “이때의 경험이 무역에서 수급의 불안정성과 정보 비대칭을 해결해야겠다는 꿈을 품게 했고, 2014년 트릿지 창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은 9월 11일 신호식 트릿지 대표를 서울 방배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식량 무역에서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면 글로벌 공급 사슬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급 사슬이 무너지는 양상은 마치 도미노와 같다. 어떤 상품이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있다고 해보자. 1등급 바이어와 1등급 공급자가 매칭되고, 2등급 바이어와 2등급 공급자가 매칭되는 식의 안정된 상태에서 갑자기 1등급 공급자에게 문제가 생겼다. 물량을 잃은 1등급 바이어는 차상등품에 해당하는 2등급 공급자를 빼앗고, 2등급 바이어는 다시 3등급 공급자를 빼앗고… 이렇게 어느 한 부분의 문제가 전체로 전이되며 사슬은 완파된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의 육가공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벌어진 육류 파동이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식량’이라는 것이 묘하게도, 기후 변화, 유행병 등으로 어떤 지역에서 과소 생산되면 다른 지역에서 과대 생산돼 결국 총량은 엇비슷하게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다만 미국에 있는 바이어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어떤 식량이 얼마나 싸게 생산되는지 알기도 어렵고, 안다고 해도 수급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곡물이야 저장 기간이 길다고 해도 과일이나 채소는? 한두 주만 지나면 상품 가치가 급락한다. 정보의 불균형이 가장 심한 영역이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농산물, 특히 과일과 채소 같은 것은 품종·품질·생산량 등의 편차가 심하지 않나. 언어와 환율의 장벽마저 있는데, 어떻게 전 세계 농산물의 가격을 수집하고 제공하나.
“사실 가격 비교가 가능할 만한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부터가 과제였다. 사과를 예로 들면, 품종부터가 수백 가지가 넘고 공급자는 수만 단위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우리는 일단 현존하는 모든 사과, 아니 모든 식량의 품종과 품위(品位)에 대한 범주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가격에 대한 데이터는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수집한다. 일차적으로 현지 직원을 통해 각국 정부·협회 등과 협력 관계를 체결한다. 수천 개의 뉴스 소스를 머신러닝으로 분석하거나, 우리와 직접 거래하는 로컬 공급자를 통해 가격 정보를 얻기도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채널로 수집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교차 비교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가격을 도출해낸다.”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이‘정확한 가격’은 아니라는 얘기인가.
“가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방금 얘기한 것은 시장의 흐름에 대한 가격, 즉 ‘시세’다. 시세를 파악한 구매자는 트릿지를 통해 공급자에게 컨택할 수 있고, 실물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이니만큼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은 협상을 통해 정해진다. 이전에는 구매자가 공급자를 찾으면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실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비대면으로 거래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중고 거래를 했더니 벽돌이 오는 세상에, 실물도 확인하지 않고 지구 반대편의 농장주에게 돈을 부친다는 게 가능한가.
“당연히 중고 거래보다 수천 배는 더 위험하다. 무역 시장 자체에 사기꾼이 많은 데다, 공급자가 악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물류에 문제가 생기면 신선도가 중요한 과일 등이 다 썩어서 올 수도 있다. 트릿지는 식품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현지 직원 70여 명을 주요 지역마다 배치하고, 이들로 하여금 상품을 실사하거나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를 중개하게 하고 있다. 신뢰를 보증하고 거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출장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제약이 심해지면서, 올해 초 쿠팡이나 아마존처럼 주문만 넣으면 식품 컨테이너를 자국 항구까지 운송하는 비대면 ‘오퍼’ 기능을 출시했다. 현재 매달 거래액 규모가 1000억원 정도인데, 성장 폭이 몹시 가파르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상황이 더 길어진다면 식량 안보 위기가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전망되기에, 국내외 전 직원이 ‘우리가 노아의 방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
‘식량 무역을 직접 한다’는 것은 카길과 같은 메이저 곡물 기업과 경쟁하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메이저 곡물 기업과 우리는 애초에 ‘노는 물’이 전혀 다르다. 곡물은 품종이 적은 대신 규모가 크고, 저장 및 물류 능력이 중요하고, 선물 시장을 통해 가격이 비교적 투명하게 결정된다. 반면 우리가 취급하는 과일이나 채소, 육류 등은 에이전트가 매칭하는 일시적 바이어와 공급자가 매번 다른 조건으로 다른 상품을 거래하는 ‘스폿(spot)’ 시장이다. 가격 추이를 보면 한 주에 30~40%포인트 등락은 기본이다. 꾼도 많고 사고도 비일비재한 ‘극한 시장’이다. 그런데 시장 규모를 놓고 보면 후자, 즉 우리 쪽이 훨씬 크다. ‘식량’이라는 카테고리는 극단적인 롱테일 경제여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토마토·샤인머스캣·자두·땅콩·연어 이런 무수히 다양한 것들로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다. 우리가 성장하면 ABCD(곡물 메이저 4개 사)가 다 합쳐도 막을 수 없지 않을까.”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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