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원대로 성장하는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차지해 1위에 오르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파두(FADU)’의 이지효(47)·남이현(47) 공동 대표는 “5년 이상의 노력 끝에 이제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팹리스에 있어서는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처지는 불모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5년 설립된 파두는 작년 하반기 1000억원대 수주를 달성하며 이런 고정관념을 깼다. 파두는 계약 조건상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세계적인 우주기업과 실리콘밸리 빅테크에도 반도체를 납품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달부터 SK하이닉스에 본격적으로 제품을 공급한다”고 했다.
◇인텔이 인정한 기술력
두 공동 대표는 각각 경영과 연구·개발을 총괄한다. 이 대표는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서 파트너로 반도체 부문을 이끌었고, 남 대표는 서울대 공대와 SK텔레콤 융합기술원에서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 대표는 “팹리스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남 대표를 설득해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파두의 가장 큰 경쟁력은 구성원들의 능력이다. 두 사람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면 세계 최고의 인재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직원들을 영입했다. 남 대표는 “파두 140명 직원 가운데 연구·개발 인력만 120명”이라며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제품 양산 경험이 있는 임원만 30명이고, 10년 이상 반도체 설계 경력을 가진 연구자도 15명”이라고 했다.
파두의 주력 상품은 데이터센터에서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고 안정적인 전송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SSD(solid state drive·데이터 저장장치) 컨트롤러다. 이 대표는 “일반적으로 4K 초화질 영화 전송에 1분이 걸리지만, 우수한 SSD 컨트롤러를 사용하면 이 시간을 2~3초로 줄일 수 있다”면서 “점차 대형화되는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에 없어서는 안 될 부품”이라고 했다. 파두의 SSD 컨트롤러 성능은 창업 초창기에 이미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 2016년 인텔이 파두의 시제품을 자체 연구소에서 검증한 결과, 인텔 동급 제품보다 2~3배 빠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 대표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2018년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설계를 완성했지만, 글로벌 대기업들이 한국 스타트업이 첨단 부품을 대량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결국 직접 생산한 모듈을 들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기술력을 검증받아야 했다. 또 생산 공장이 코로나 방역으로 멈추는 바람에 납품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서 계약이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이 대표는 “독보적인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10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했고,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종합 반도체 업체가 목표”
파두의 다음 목표 종합 반도체 업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남 대표는 “SSD 컨트롤러 시장은 현재 4조원 규모지만, 매년 데이터양이 50%씩 증가하면서 100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며 “이 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달성하는 것이 1차 목표”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으로 진화하는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다양한 반도체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파두는 지속적인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내년 상반기 기업공개도 계획하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의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마치 ‘반도체 서부 개척시대’ 같다”고 했다. AI·자율주행·5G(5세대 이동통신)·로봇 등 미래 산업이 현실화되면서 용도가 세분화된 반도체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팹리스 업체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다면 국내 팹리스 업체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파두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벌찬 기자 & 장형태 기자